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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 30편 1부 왜 못 잡았나
우리 동네가 먼저 안다/1부 왜 못 잡았나/제5회

공동은 어떻게 자라는가

2026-07-28 · 읽는 데 9분

시간표를 그려보면

싱크홀을 조기에 잡겠다고 말하려면, 먼저 언제 잡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의 순서를 정리해야 한다.

물이 흙을 쓸어 가는 경우를 기준으로 그 과정을 단계로 나눠 보면 대략 이렇다.

0단계 — 원인 발생. 매설관에 균열이 생긴다. 또는 지하 공사로 지반이 교란된다. 이 시점에 빈 공간은 아직 없다. 겉으로는 물론 아무 변화가 없다.

1단계 — 흙이 실려 나간다. 새는 물이 주변의 가는 입자부터 실어 간다. 아주 느리다. 빈 공간이라 부를 만한 것도 아직 없다. 흙이 조금 느슨해지는 정도다.

2단계 — 공간이 생긴다. 느슨해진 자리가 무너지며 작은 빈 공간이 만들어진다. 위쪽 흙이 그 자리로 조금 내려앉고, 그만큼 위쪽이 또 느슨해진다. 이 과정이 스스로 반복되며 공간이 위로 자라 올라온다.

3단계 — 포장 바로 밑에 도달한다. 빈 공간이 포장층 아래까지 올라온다. 이제 포장은 아래 지지 없이 자기 강성만으로 하중을 버티는 상태가 된다. 겉으로는 여전히 멀쩡하다.

4단계 — 버티는 구간. 포장이 다리처럼 하중을 지탱한다.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는 공간의 크기, 포장 두께, 지나가는 차량의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

5단계 — 붕괴. 어느 순간 한계를 넘고 내려앉는다.

관측 가능한 구간은 어디인가

이 시간표에서 우리가 실제로 손댈 수 있는 구간이 어디인지 보자.

0~2단계는 표면에서 관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포장층은 여전히 아래 지지를 받고 있고, 역학적으로 정상 상태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이 구간을 잡으려면 땅속을 직접 들여다보는 방법밖에 없다. 그건 정밀 조사 장비의 영역이고, 우리가 하려는 방식으로는 접근하기 어렵다.

5단계는 이미 늦었다. 사고가 일어난 뒤다.

그러니 남는 것은 3~4단계다. 포장 아래가 비었지만 아직 무너지지 않은 구간.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역학적으로는 이미 달라진 상태.

우리가 노리는 것은 이 구간 하나다. 이걸 분명히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싱크홀을 예측한다”는 말은 과장이 되기 쉽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원인 발생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고, 땅속을 투시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공동이 붕괴하기 전에 그 존재를 알아채는 것이다.

3~4단계에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 구간의 도로는 정상 도로와 무엇이 다를까.

포장 아래가 비면, 그 구간의 지지 조건이 바뀐다. 원래는 아래 전면이 받쳐주던 것이 이제 양옆만 받쳐주는 형태가 된다.

이런 변화는 세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처짐이 커진다. 같은 무게의 차가 지나가도 포장이 더 많이 내려간다. 그 양은 아주 작다. 눈으로 보이는 크기가 아니다.

되돌아오는 방식이 달라진다. 눌렸다가 원래대로 돌아올 때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단단히 받쳐진 판과 헐겁게 걸쳐진 판은 되튀는 성질이 다르다.

울리는 성질이 생긴다. 아래에 빈 공간이 있으면 그 구간이 하나의 울림통처럼 작동할 수 있다. 특정한 흔들림에 더 크게 반응하게 된다.

세 번째가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건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성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처짐이 0.1밀리미터 더 크다는 것은 측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흔들리는지”가 달라졌다면, 그건 신호의 모양이 달라진 것이고 다른 방법으로 찾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3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시간이 우리 편인 이유

여기서 이 프로젝트에 유리한 조건이 하나 있다.

3~4단계는 짧지 않다. 정확히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상황마다 다르지만, 포장이 버티는 동안 계속된다. 며칠일 수도 있고 몇 달일 수도 있다.

이게 왜 중요한가. 우리 방식은 한 번의 측정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의 차가 한 번 지나가며 얻는 데이터는 조악하다. 노이즈에 묻혀 있고, 차종과 속도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그 한 번만으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그 구간이 몇 주 동안 그 상태로 있다면, 그 사이에 수천 대가 지나간다. 서로 다른 차종, 서로 다른 속도, 서로 다른 시간대. 개별 측정의 오차는 방향이 제각각이지만, 노면에서 오는 신호는 모든 통과에 같은 방향으로 실린다.

위험이 오래 머물수록 우리가 유리해진다. 이건 기존 정밀 조사와 정반대의 성질이다. 정밀 조사는 한 번 지나가며 순간을 포착해야 하고, 그 순간이 위험 구간과 겹칠 확률에 기댄다. 우리는 계속 보고 있으므로 겹칠 확률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을 찾을지 아직 모른다

여기까지 오면 방향은 분명해진다. 3~4단계 구간에서 노면 응답의 변화를 찾는다. 반복 관측으로 오차를 줄인다.

문제는 그 변화가 정확히 어떤 모양인지 우리가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처짐이 커지고 되튀는 성질이 달라지고 울림이 생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도심 주행 데이터에서 그것이 어떤 숫자로 나타나는지는 다른 문제다. 아스팔트 상태, 차종, 속도, 타이어, 폰의 거치 방식이 모두 뒤섞인 신호에서 어느 부분이 그 변화인지 미리 알 수 없다.

기계학습으로 찾겠다고 말하려면 정답이 있는 예시가 필요하다. “이 구간은 아래가 비어 있었다”고 확인된 데이터. 그런데 그런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스마트폰으로 공동 위를 지나며 기록해 둔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람이 등장한다.

정답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그 길을 매일 지나는 사람의 판단이다. 완벽한 정답은 아니다. 착각이 섞여 있고, 놓친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게서 시작한다. 2부의 이야기다.


다음 편 예고 — 비용·주기·깊이 — 기존 방식의 삼중 한계. 1부를 마무리하며, 기존 접근이 왜 구조적으로 이 구간을 놓치는지 정리한다.

연재 안내

「우리 동네가 먼저 안다」는 5부 30편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읽은 글은 1부 왜 못 잡았나의 5번째(전체 제5회)입니다.

연재 전체 목차 펼쳐보기
1부

왜 못 잡았나

1~6회
  1. 01그 도로는 어제도 멀쩡했다읽는 데 8분
  2. 02도로를 재는 기술은 이미 오래됐다, 그런데 왜읽는 데 9분
  3. 03포트홀과 싱크홀은 다른 문제다읽는 데 8분
  4. 04표면이 아니라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읽는 데 8분
  5. 05공동은 어떻게 자라는가지금 읽는 중
  6. 06비용·주기·깊이 — 기존 방식의 삼중 한계읽는 데 8분
2부

사람이 먼저

1단계7~13회
  1. 07매일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읽는 데 8분
  2. 08\"쿵\" 하는 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나읽는 데 9분
  3. 09느낌을 데이터로 바꾸기 — 신고 버튼의 설계읽는 데 9분
  4. 10동네에 깃발을 꽂다읽는 데 8분
  5. 11한 사람의 착각, 백 사람의 확신읽는 데 9분
  6. 12위키는 어떻게 틀린 정보를 걸러내는가읽는 데 9분
  7. 13누구의 신고를 믿을 것인가 — 신뢰 점수읽는 데 9분
3부

신호 읽기

14~21회
  1. 14진동은 무엇을 말하는가읽는 데 9분
  2. 15주머니 속 가속도계라는 센서읽는 데 9분
  3. 16시간을 주파수로 — 푸리에 변환읽는 데 10분
  4. 17라플라스 변환과 시스템의 응답읽는 데 9분
  5. 18가다서다 — 도심 주행이라는 소음읽는 데 9분
  6. 19차량마다 다른 조건, 정규화의 문제읽는 데 9분
  7. 20같은 지점을 수백 번 지나간다는 것읽는 데 9분
  8. 21미약한 신호를 건져 올리는 법읽는 데 9분
4부

physical AI

2단계22~27회
  1. 22드문 재난을 어떻게 학습하는가읽는 데 9분
  2. 23시뮬레이션으로 데이터를 만든다읽는 데 9분
  3. 24physical AI란 무엇인가읽는 데 9분
  4. 25사람의 '물컹함'을 기계에 가르치기읽는 데 10분
  5. 26사람의 신고와 기계의 신호가 만나면읽는 데 9분
  6. 27오경보와 놓침 사이 — 임계값의 윤리읽는 데 9분
5부

도시로

28~30회
  1. 28위험 지도를 그리다읽는 데 9분
  2. 29NumTerra 해부 — 앱과 데이터 파이프라인읽는 데 9분
  3. 30스스로 감지하는 도시읽는 데 9분